‘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사랑만으로는 함께 살 수 없었습니다.’
이혼을 고민하며 상담실을 찾는 이들의 첫마디는 대부분 이와 비슷한 어조를 띱니다. 하지만 정작 상담을 이어가다 보면, 그들이 고민하는 핵심은 사랑의 유무가 아니라, 삶을 함께 책임질 수 없다는 자각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습니다. 언젠가부터 각자의 고단한 일상은 서로에게 지지보다 부담이 되었고, 함께 있다는 사실이 위로가 아닌 고립으로 느껴졌으며, 책임을 나누기보다 떠넘기게 된 순간부터 관계는 이미 기울기 시작한 것입니다.

배우자 중 누군가는 관계를 회복해보고자 했을 수도 있습니다. 대화의 시도, 아이를 위한 인내, 가족 행사에 나름의 정성을 다했던 시간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노력이 더는 관계를 회복하는 데 의미를 갖지 못할 때, 더는 함께 걸어갈 수 없음을 직면하게 됩니다. 이혼은 사랑이 식어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지지 않는 관계에 더는 자신을 소진시킬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양육 문제는 그 책임의 무게를 더욱 실감하게 합니다. 아이는 여전히 양쪽 부모를 모두 필요로 하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한쪽 부모가 모든 양육의 책임을 짊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렇게 남겨진 부모는 이혼 이후에도 온전히 혼자의 몫으로 자녀의 미래를 설계해야 합니다. 양육비를 정기적으로 지급받는다고 해도, 단순한 경제적 분담만으로는 아이를 키우는 일이 나눠지지 않습니다. 부모라는 지위는 이혼과 함께 끝나는 것이 아니며, 책임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또한, 재산의 분할 과정에서도 ‘공정함’은 감정보다 객관적인 사실에 기초해야 하지만, 실제 상황은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재산을 공동으로 형성해왔다는 사실은 쉽게 잊히고, 자신의 기여가 과소평가되었다는 인식에서 비롯되는 갈등은 이혼 후에도 후유증처럼 남습니다. 심지어 이혼 당시에는 포기했던 사항들이, 시간이 지나 현실적인 필요에 따라 다시 꺼내지기도 합니다. 관계는 끝났지만, 책임의 분배가 미완이라면 완전한 정리는 어렵습니다.

배우자의 외도가 원인이었던 경우, 그로 인해 입은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청구 문제도 적잖은 고민으로 이어집니다. 다만 외도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로 인해 깨진 신뢰, 무너진 일상의 회복 여부입니다.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는 이혼의 직접적인 사유가 되지 않더라도, 오랜 시간 쌓여온 고통의 핵심일 수 있습니다. 이혼 과정에서 요구하는 수많은 설명과 증빙은 결국, 누가 이 관계를 책임지지 않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기록이 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혼을 결심하게 된 사람들에게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혼은 사랑을 포기하는 선택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과 자녀,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 대한 책임을 다시금 진지하게 바라보는 선택입니다. 더는 기대할 수 없는 관계에서 책임을 다하려 애쓰기보다, 그 무게를 조율하고 다시 설계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때로는 더 현명할 수 있습니다. 관계는 깨질 수 있어도, 책임은 여전히 남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 선택은 더 이상 회피가 아닌 용기로 남게 됩니다.